2022. 11. 4.
해밀톤호텔 서편의 작은 골목에 할로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해밀톤호텔 서측 골목 저지대 중간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 행인끼리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서로 뒤엉켰고, 불편한 표정과 자세를 유지한 채 응급 구조를 기다려야만 했다.
해밀톤호텔 북서측 삼거리(고지대)에서는 20분만에 막대한 인파가 빠르게 유입되는 바람에 서측 저지대 쪽 상황은 순식간에 심각해져만 갔다. 사고 초반 뒤쪽 인파였던 사람들도 앞쪽으로 누적되어만 갔고, 뒤쪽 인파에서 세 차례 정도 밀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져 이른바 '연쇄 깔림'으로 인해 앞쪽 참변이 가중됐다.
설상가상으로 스마트폰을 꺼낼 겨를도 없거나 와이파이까지 먹통인 상황 속에서 뒤쪽 인파는 이때까지도 (미디어를 통한)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고 그저 멈출 줄 모르며 내려오고만 있었다. 앞쪽 인파에서 청색증 및 구토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하자 일제히 '뒤로! 뒤로!'를 외치며 뒤쪽 인파가 대부분 역행하여 빠져나갔으나, 이미 300여 명의 사상자끼리 의식을 잃고 몸이 껴서 빼내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미 외상성 질식이, 밑에 깔린 사람들은 장기 파손으로 인한 복부 팽창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결과적으로의 공간에서 150여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한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들의 도로 상황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영상 최초 신고 이후 40분 이상이 지난 23시가 되어서야 경찰의 도로 통제에 따른 구급차 진입이 비로소 원활해졌다고 한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구급차가 들어오는 건 가능했지만 수많은 구급차가 서로 뒤엉키면서 인근 가용 병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지체됐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날부터 수십 차례 징후가 감지되었으나 결국에 압사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 전날인 10월 28일 저녁, 이태원 뒷골목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사고 구간에서 정체가 길어지자 일부 사람들이 앞 사람을 밀치고 이동해 사람들 간 언성이 높아지고, 몇몇은 인파에 떠밀려 넘어지기도 하는가 하면,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지는 등 위험한 모습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게다가 언론보도가 아니더라도 인파에 떠밀려 다친 사례나 서로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진 사례의 경우 목격담이나 영상, 사진이 넷상에 올라오기도 했다.
사고 당일인 10월 29일 오후부터, 통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 방향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파로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했다. 사고 발생 3시간 40분 전인 18시 34분에 압사 언급을 하며 최초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사고 발생 직전까지 112신고가 경찰이 공개한 것만 11건이 들어왔다. 신고 내용 모두 압사사고 우려였는데 경찰이 사건을 종결시켜버렸다. 심지어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가 사고지점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 결국엔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특히, 첫 출동의 경우 경찰이 현장에 갔으나 군중에게 해산 요청만 하고 종결시켰다. 게다가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가 상위 기관인 서울경찰청에 사전 및 당일에도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으나 서울경찰청에서 묵살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프리카TV의 BJ꽉꽉은 사고 지점에서 사고 발생 1시간 전에 위험한 상황을 겪고 탈출해 인근 이태원파출소를 찾아 통제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한 네티즌은 사고 1시간 전에 이미 사고 위치에서 인파에 깔려 소지품도 잃었다가 다행히 탈출했다고 했으며,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고 직전에도 인파 속에서 충격파가 몇 번이나 휘몰아쳤다고 한다.
사고 1시간 전, 사고 지점에서 100m 가량 떨어진 '만남의광장 이태원본점' 앞에서 진행된 KBS 9시 뉴스 생방송 보도를 보면 이태원의 경사진 골목길을 양쪽에서 오르내리는 혼잡스러운 모습이 잘 보인다. 뉴스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오고 있다고 했으며, 보도 자체도 인파와 시끄러운 가게 스피커의 음악 소음로 인해 골목에서는 진행이 불가능해 인근의 좁은 담과 화단 위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사고 전날에도 경찰서에 신고가 많이 접수되는 등 징후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이 징후를 놓치지 않고 6호선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이태원로 및 보광로 일대 도로 통제 및 차 없는 거리 운영 등 사전 대책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소 156명의 사망자를 내어, 국내에서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전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중 가장 피해가 컸었던 1959년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사망자 67명)를 능가하여 역대 대한민국 압사 사고 사망자수 1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