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프로테스탄트에 뿌리를 둔 나라다. 때문에 공화당(보수)은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고 우파로 갈 수록 근본주의적 성향을 띈다. 그들에게, 성경 속에 등장하는 민족주의적 선민사상(백인우월주의 등), 번영과 발전과 같은 이념들이 우선시 되는 이유다.
반면 이를 견제하며 발전해 온 미국의 진보세력인 민주당은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가치에 무게를 두며 덩치를 키워왔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민정책에 우호적이고 다양성과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해 왔다. 안타깝게도,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미국 대선은 실패한 선거이자 미래가 불투명한 미국의 앞날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트럼프는 공화당을 극단(우)으로 몰아넣었다. "자국 우선"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가 모여 합의한 국제기구의 활동과 조약 등을 무시하며 차별과 혐오로 일관했다. 인권과 같은 감성적 유물(?)은 멀리 내다버린 지 오래. 희미하게나마 공화당의 색이 있었다 할 수 있지만, 광기 그 자체였다.
보수당이 광기였다면 민주당은 부패했다. 일본의 막대한 로비자금으로 동북아 질서를 유지하려는 외교전략부터, 엘리트 층의 비리와 부정부패는 민주당이 마땅히 가져야할 색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힐러리가 패배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아닌척 하지만 사실 뒤에서는 온갖 구린내 나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벌였던가.
오랜기간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수많은 지지자들이 등을 돌렸던, 트럼프 같이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던 이가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나마도 민주당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샌더스를 노골적인 비난하고, 현직 대통령으로서 경선레이스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말 뿐인 오바마. 그렇게 힐러리-트럼프라는 도긴개긴의 형세를 만든 그에게 무한 책임이 있다.
특정 집단에 우월감을 이용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착시키려 했던 트럼프 같은 괴물에게, 그나마 우리에게 우호적이었었다는 이유로 한반도의 미래를 맡길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참 절망적이었지만, 남북 통일을 반대하며,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외교정책(결국 일본의 돈에 좌지우지되는)을 고수하고 있는 민주당의 집권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 역시도 우리에겐 딱히 희망적이진 않다.
정체성을 잃은 두 정당의 레이스, 결국 이번 미국 대선은 누구 하나 더 나은 게 없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