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벨리 은행은 Silicon Valley Bank(SVB)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실리콘 밸리)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상업 은행으로 2023년 3월 10일 미국 은행 역사상 두 번째 규모로 큰 파산을 내고 문을 닫았다.
1983년 빌 비거스태프와 로버트 메데아리스가 설립했다. 1995년 새너제이에서 산타클라라로 본사를 옮긴 뒤 미국 각지에 지점을 냈다. 또한 해외 지점도 개설하고 크게 사세를 확장했다.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큰 은행이었고, 부유한 벤처 사업가들과 스타트업 회사가 주 고객이었다. 2008년에 미국 재무부로부터 부실 자산 프로그램을 통해 자금지원을 받기도 했지만,이후에도 계속 확장하여 2012년에는 상하이 푸동 은행과 합작을 발표했다.
2016년에는 25.9%의 시장 점유율을 내며 한때 시장 점유율 기준 미국 최대 은행의 자리에 올랐다. 2022년 12월 기준으로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었다.
그러나 2023년 3월 9일, 이자율 상승으로 인한 국채매각으로 18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입고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뱅크런이 시작되어 주요 투자자들과 기업이 돈을 빼기 시작했고, 3월 10일 주가가 66%가 빠지면서 주식거래가 중지됐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예금자 보호 절차에 들어가 10일 SVB 전 지점을 폐쇄하고 2090억 달러(약 280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압류했다. 실리콘 밸리의 경제와 미국 경제 및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이 갈지 전 세계 언론이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회사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관련 사태로 인해 글로벌 주가와 비트코인 시세도 하락했다. 이 참에 부동산 관련 은행과 부실은행을 정리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그렇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시스템의 위기자체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돌고 있다.
한편 일론 머스크는 본인이 인수할 의사가 있다고 발표했다.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한 이유
실리콘밸리 은행(SVB)은 미국 금리가 오르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매커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SVB가 스타트업들의 은행으로 불리는 매우 특수한 구조라는 점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들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돈을 받으며 설립 시 3차, 4차 펀딩까지도 간다. 그리고 미국 자본시장의 투자력은 어마무시하다. 즉 이들 스타트업은 현금을 많이 들고 있었고, 스타트업이 주요 고객인 SVB에는 그 현금들이 그대로 쌓였다. 그런데 스타트업 기업은 일반 기업들과 큰 차이점이 있으니, 바로 빚을 내서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초에 펀딩을 받았으니 어지간하게 큰 기업이 아닌 경우에는 펀딩에 성공했는데 당분간 은행에 별도로 빚을 낼 일도 없다. 설령 빚을 내어 투자를 했더라도 스타트업의 특성상 캐시카우를 처음부터 확실히 쥐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즉 이들 스타트업은 안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실제 벌어들이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런 특성들은 SVB의 입장, 즉 은행 입장에서는 악영향이다.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야 하는데, 전통적인 기업은 이게 된다. 은행에서 빚을 내어 과감하게 선행 투자를 하고, 그로 인해 기업의 이익이 증대되면 이게 곧 은행의 이자 수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다. 그러나 SVB의 주요 고객 포트폴리오는 죄다 현금 부자인 스타트업이니 역설적으로 스타트업들의 수익률이 오를수록 SVB에는 현금만 쌓여가는데 이 현금을 빌려줄 곳이 없었다. 사실 여기서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성공하여 다른 산업에도 돈을 빌려주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SVB의 전문가들도 바보는 아니어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시도했다. 쌓여있는 현금을 어떻게든 굴려야 은행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SVB가 가장 많이 투자한 분야 중 하나가 미국 국채, 그것도 장기채였다. 평시라면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초 우량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를 다량 보유하고 있으면 수입이 크지 않지만 안정적으로 계속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금리 인상이 어찌된 일인지 SVB에게는 악몽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미국 국채 금리도 같이 인상된다. 채권자(일반적인 투자자나 은행)들에게는 사실 파티 타임이다. 이자율이 오르면 그만큼 자신들의 수익도 늘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SVB는 상술한 것처럼 이자율이 낮던 시절에 미국 국채 장기채를 너무 많이 사들인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이자율이 오르니까 이들 장기채는 문자 그대로 똥값이 되고 말았다. 단기채는 그때그때 높은 수익이 나지만 장기채는 아니다. 10년 후에 2% 주는 채권이 있고(장기채), 1년 후에 5% 주는 채권(단기채)이 있다면 중에 고르라면 투자자들은 당연히 후자를 고를 수밖에 없다. 즉 같은 미국 국채라도 단기채는 인기가 있어 값이 오르지만 장기채는 폭락한다.
그리고 이 폭락사태는 그대로 SVB가 보유한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은행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절반 이상이 장기채인 상황에서 장기채 가격이 바닥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위에 써놓았듯 SVB는 전통적인 대출이자 수입이 현저히 적은 은행이다. 이러다보니 현금은 죄다 장기채에 묶여 있고, 그 장기채는 가치가 하락했으며, 다른 수익 나올 구멍도 없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는 SVB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정확히는 코로나 사태로 스타트업의 유동성이 좋아졌'었'다. 코로나로 인한 특수 상황에서 여러 스타트업들이 돈을 많이 벌었고 그 캐시는 전부 SVB에 쌓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서서히 종식되며 스타트업의 코로나 특수 경기는 저물기 시작했고 흘러넘치던 유동성도 점점 제자리로 돌아왔다. 즉 유동성 경색이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에서 언급한 미국 국채 금리의 상승이 다른 은행과 달리 역설적으로 SVB에는 더 큰 악재로 다가온 것이다.
결국 투자자들은 SVB의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스타트업들도 유동성이 경색되자 쌓여있던 현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이 둘의 시너지효과로 SVB는 뱅크런이 일어나 결과적으로 SVB의 자산가치는 하루만에 60%가 날아가고야 만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은행이 포트폴리오를 이상하게 짜면 은행 자체가 망할 수 있다는 사례가 증명되었다. 투자의 기본 철칙 중 하나인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원칙을 스스로 어긴 댓가를 치룬 셈이다.
SVB의 파산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금융업 전체로의 위기로 번지지 않을 거라는 예측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은행의 파산은 확실한 악재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고 그것이 전체적인 주가 하락, 가상화폐 하락 등으로 이어지고는 있다. 그러나 SVB의 포트폴리오가 워낙 특수했기 때문에 다른 은행들은 SVB처럼 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금융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애초에 금리가 오르면서 다른 은행들은 이자 파티를 벌이고 있는 중이므로 어지간하게 어디 묶여있지 않은 이상은 망할 가능성은 적다.
반면 이와 다르게 금융권 전체로 충격이 퍼질 것이란 예측도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인 신용등급 평가가 이번 사례에서 무력화되었음이 드러나서이다. 즉 신용등급으로도 부실 기업이나 은행을 거를 수 없다면 무엇을 신뢰하고 투자할 수 있겠는가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인 것. 이 때문에 JP모건조차도 믿을 수 없고 망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월가 점령 시위 이후로도 미국 금융계가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