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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철천지 원수이다. 이 두 나라의 국민감정은 한일관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하며, 이미 20세기말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른 적도 있는 그야말로 적대국이다.
이 두 나라 사이의 적대감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나, 가장 최근의 문제는 이번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귀속이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으나 구소련 해체 이후 아제르바이잔이 영유하고 있었다.
이 구도가 깨진 것이 1993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과 아르메니아 본토 사이의 회랑 지역을 대부분 장악했고 현재도 실효 지배 중이다.
그런데, 아르메니아인이 다수 거주했던 이 지역이 왜 아제르바이잔의 손에 넘어가 분쟁의 불씨가 된 것인가? 이는 시계를 멀리 돌려 1921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자리로 가야 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1919-20년경 적군(러시아 소비에트 군)은 캅카스 지방을 일제히 장악하고 각지에 소비에트 정권을 세웠는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소비에트 정권 수립 후 아제르바이잔 인민위원회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영유권을 아제르바이잔 쪽으로 정리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소련 공산당 코카서스 지국은 아르메니아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에 반발한 아제르바이잔은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자고 주장했고 이에 코카서스 지국도 동조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스탈린이 개입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별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캅카스의 레닌’ 이 그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스탈린 본인이 젊은 시절 캅카스 지방에서 볼셰비키를 이끌고 멘셰비키들과 적극적으로 항쟁한 끝에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본인 스스로가 조지아 출신의 소수민족임을 강조하여 소련 공산당의 민족문제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민족분쟁 해결에 열의를 보였으니 그가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 참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일은 다소 문제가 많았다. 단 한 차례의 심의 또는 당 지국의 투표 절차 없이, 본인이 참석하는 회의를 한 번 더 열고 그 회의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영구히 아제르바이잔에 귀속시켜 버린 것이다.
당시 스탈린이 왜 이런 날치기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안타깝게도 당일 회의와 관한 자료들에 모두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연구자들은 두 가지 정도로 그 이유를 추정하고 있다.
첫째는 터키 및 이슬람권과의 우호도 증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제르바이잔 귀속이 스탈린의 독단이 아닌 레닌을 포함한 소련 공산당 수뇌의 결정일 것으로 추측한다. 레닌과 아타튀르크는 서로 사이가 좋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제르바이잔 인민공화국의 설립 당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소 거칠게 반 볼셰비키 활동을 벌인 데 대해 스탈린이 보복 조치를 했다는 견해다.
두 가지 견해 중 무엇이 정확한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920-21년 당시 레닌의 경우 와병 중이었다는 사실, 레닌-아타튀르크 밀약설의 경우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라는 사실 등 때문에 보복조치라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
이후 아르메니아는 1970년대 후반까지 모스크바에 지속적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귀속을 요청했으나 모스크바는 묵묵부답이었고, 결국 소련이 붕괴되자마자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한편 1993년 아제르바이잔이 속절없이 밀렸던 때와는 달리 2020년의 전쟁은 아제르바이잔이 상당히 우세한 형국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의 뒤에 터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터키의 에르도안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지원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아제르바이잔군은 터키의 지원 덕에 제공권 싸움에서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다.
게다가 1990년대 후반과는 달리 현재는 카스피 해 유전의 채산성이 개선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보다 더 힘이 센 나라가 되었다. 결국 국력의 역전과 터키의 지원이 아제르바이잔을 우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별 관련 없어 보이는 프랑스가 이번 전쟁에 개입하는 이유는 프랑스가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민스크 그룹’ 의 공동 의장국이기 때문이다. 국제 분쟁의 중재자에 늘 프랑스가 끼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늘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