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한 이유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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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한 이유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는 1994년 12월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3국과 러시아, 미국, 영국간 체결한 각서이다.


또한 중국과 프랑스 역시 별개의 문서를 통하여 핵 폐기를 대가로 해당 3국과 안전 보장 각서를 체결하였다.

소련 해체 이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3국이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체결되었다.



1991년 구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원래 소련에 소속되어 있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는 소련이 개발 및 생산한 막대한 양의 핵무기가 잔존하게 되었다. 그 중 우크라이나에 잔존한 핵미사일은 176개였고 핵탄두는 1800여기로서, 그 자체로 세계 3위권의 핵무기 보유량에 달할 정도였다. 또한 카자흐스탄 역시 141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고 벨라루스 역시 825개의 핵탄두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역시 독립 초기에는 핵무기를 그대로 보유하여 핵보유국가로 인정받으려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으나 소련 붕괴와 자본주의 체제 전환 부작용으로 물가폭등과 임금체불 일상화, 사회복지제도 붕괴 등에 따른 마피아 창궐, 팽창해가는 지하경제 등 심각한 가난에 빠졌던 이들 국가들은 핵미사일을 활용할 처지가 못되었고, 무기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사람들도 미화로 몇달러 정도의 푼돈을 받았던 시절인지라 돈을 벌기 위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 다른 무기와 마찬가지로 핵미사일을 외국에 팔아먹으려는 시도가 많았다. 예를 들어 1992년부터 재임한 우크라이나의 초대 부총리 Ihor Yukhnovskyi는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소유임을 주장하며 핵무기를 국제 경매에 내놓아 가장 비싸게 부르는 국가에 팔겠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할 정도였다.

즉,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핵 미사일은 상징성 외 쓸모는 없는 고철에 불과하고 미국과 러시아 등 기존 핵보유국 입장에서 이들 핵미사일의 존재는 장차 이 부실한 나라들이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기라도 하면 핵무기가 암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등, 국제 핵질서를 위협하는 요소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핵미사일에 들어간 핵물질을 이런 신생국들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빼돌려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나 기타 과격단체 조직원들이 빼내 자국 혹은 타국 테러에 사용하는 것은 인류 전체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이에 따라 미국은 넌-루가 협력적 위협 감소 프로그램을 통하여 구 소련 영역내 존재하는 이들 핵무기의 감소를 대가로 이들 국가에 막대한 양의 경제적 지원을 실시하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추진하였다.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길 원하지 않았던 러시아도 이에 동의하여 우크라이나에게 핵포기를 압박하였고 거부 시 제재 및 군사적 공격도 상정하였다. 결국 쓰지도 못할 핵전력을 보유하느니 차라리 뭐라도 하나 더 챙기자는 생각을 한 우크라이나는 1994년 1월 체결된 리스본 약정서를 통하여 미국, 러시아와의 합의를 통해 핵포기를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기로 약속받는다.

결과적으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3국은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였고, 1994년 12월 미국과 영국, 러시아를 대상으로 주권과 국경선의 보장을 골자로 하는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핵무기를 최종적으로 포기하였다. 또한 우크라이나 등의 핵 무기는 전부 1996년까지 러시아에게 이관되어 러시아의 책임하에 폐기되었다. 미국은 약속대로 경제적 지원을 하였고 우크라이나의 핵과학자와 기술자 4500여 명을 민간 직업으로 전환하는 데에만도 1억8000만 달러의 비용을 지출했다.

미국은 CRT 프로그램 실행 당시 연간 4억달러, 4년 계획으로 총 16억달러를 책정하였으나 이후에도 프로그램 진행을 계속 되었고 1991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이 CRT 프로그램 실행을 위하여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게 지급한 금액은 누적으로 87.9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일단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시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로 인하여, 우크라이나가 국제적인 영향력을 얻는 것과 핵무기로 인하여 타국으로부터 침략받지 않을 자체적인 국방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정부가 핵을 포기하는 데에는 다음의 이유가 있었다.



- 자체적인 생산 및 사용 능력 없음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 잔존했던 핵무기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 국가는 소련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자국 영토 내에 배치되어 있었던 미사일과 탄두, 폭탄 등을 가지게 된 것 뿐이다. 이들은 발사체 기술이나 우라늄 농축설비 등 자체적인 핵무기 개발능력이나 시설은 없었고 무엇보다도 지휘통제상의 문제로 쓰려고 마음먹는다 해도 실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즉, 이 핵미사일을 발사시키고 격발하는 데 필수적인 PAL(Permissive Action Links) 등의 접근 제어장치나 발사 코드는 전부 모스크바 지휘통제소에서 관리하였고, 발사코드에 접근하려 시도하면 즉시 모스크바에 통보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가 보유했던 핵 미사일은 사실 무기로서의 효용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우라늄 농축설비와 발사체 기술만 없다 뿐이지 여타 설비와 관련 분야 연구진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핵무기 통제권을 가져오려고 마음먹고,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진짜 핵무기 보유국이 되는 것은 수 년 내로 가능했을 것이다. 핵물질과 기폭장비 등 탄두의 핵심 부품만 빼낸 뒤 자체적으로 발사체를 개발하거나, PAL 코드를 자력으로 해독/해킹해 소프트웨어를 재구축하던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랬다가는 초강력 경제제재로 민생 수준은 북한 이하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며 러시아의 묵인하에 이뤄질 미국의 예방공격, 우크라이나의 핵보유 시도를 바로 알아챈 러시아의 공격이 있을 것이니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 제한된 시간과 너무 많은 비용


핵 미사일 시설을 유지하는데는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한 이유중 하나다. 그리고 만약 우크라이나가 막대한 자원을 들여 핵무기를 유지하기로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영원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핵탄두에는 최대 10년이라는 사용 시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핵 보유국으로 계속 인정받기 위해서는 10년내로 우크라이나 독자적인 핵 무기 관련 시설, 인력, 자원 등을 총체적으로 확보하여야 했다.

즉, 핵 무기 보유로 인하여 국제정치적 이득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는 유효기간 최대 10년짜리의 이벤트에 불과했고 10년이 지나면 핵탄두는 그냥 방사성 폐기물로 전락하기 때문에 핵무기 보유국으로서의 입지를 계속 가지기 위해서 가난한 신생국가였던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막대한 희생과 많은 비용을 들여 빠른 시일내에 핵탄두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이후에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것을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핵무기 보유/포기 여부를 검토한 우크라이나 정부 내부 보고서가 1992년에 작성되었고 레오니드 크라우추크의 말에 따르면 1998년까지는 핵탄두를 신품으로 교체해야되는 상황이므로 우크라이나는 미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뚫고 불과 6년내에 핵탄두 생산 능력을 확보하여야 하는데 이렇게 해서 우크라이나가 핵 무기 생산능력을 확보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던 반면 신생국가 우크라이나 내 다른 필요한 곳에 투입될 자원을 오직 핵 무기 생산 및 유지 하나만을 위하여 투입하는 것은 자원낭비에 불과했다. 그럴 바에야 핵 무기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는게 훨씬 이득이었다.



-러시아로부터의 지원 단절 및 갈등 격화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현실은 결코 러시아를 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키예프 루스를 역사적 뿌리로 삼는 우크라이나는 역사상 러시아와 민족적, 언어적, 역사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우크라이나 인구 중 절반은 러시아계였을 정도로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우크라니아의 경제적 상황 역시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일례로 1993년 기준 우크라이나의 총수출의 43%, 수입의 52%가 러시아와의 교역으로 발생한 것이었고 우크라이나 석유 수요량의 90%도 러시아로부터 온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의존성은 핵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우크라니아 핵 발전소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원료와 장비는 거의 러시아로부터 의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핵 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핵 무기 가용능력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를 바 없었다.

또한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는 정식 국교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고 독립국가연합 참여 및 크림 반도의 영유권 등을 놓고 분쟁중이었는데 우크라이나는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요구하던 조건 중 하나(핵무기 포기)를 수용함으로써 대러시아 협상에서 좀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핵 포기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에 대한 보장을 받았고 이는 이후 독립국가연합 내에서의 활동과 크림 반도 영유권 협상에서 보다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 국제적 고립과 증가하는 대내외적 위험성

당시 우크라이나가 가장 걱정하던 사안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핵 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 및 시설이 미국 등 서방 국가의 핵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냉전 시기라면 소련의 보호나 지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크라이나의 핵 무기 보유는 미국, 러시아나 영국 등 기존 핵보유 국가는 물론이고 이라크, 파키스탄 등 이미 핵보유로 제재를 받고 있던 국가들까지도 좋아하지 않는 등 국제사회의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만약 우크라이나에 러시아나 미국이 제재, 봉쇄 심지어 핵 공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막아낼 수단이 전혀 없다는 것이 우크라이나의 고민이었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핵 포기를 한다면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 서방 선진국으로부터 정상적인 국가로서 인정을 받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함과 동시에 동시에 러시아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예상하였다.

우크라이나가 걱정하던 위험성에는 국내적인 위험도 있다. 러시아와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의 제재와 봉쇄로 촉발될 수 있는 국내정치적 불안뿐만 아니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대표되는 핵 사고도 그 위험 중 하나였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하기 불과 5년전에 우크라이나는 이미 인류 역사상 유래없는 핵 사고를 겪었고 당시에도 많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소련의 막강한 권력과 관료체계, 모스크바의 날고 기는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지원과 조력 하에서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후유증을 제대로 수습하기 못한 상태였는데, 장차 국제적으로 고립된 우크라이나가 미숙한 경험과 관리능력을 가진채 단독으로 핵 관련 시설을 운영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핵 사고를 과연 어떻게 책임지고 누가 도와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렇듯 핵 미사일과 ICBM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과 핵미사일과 ICBM을 모두 폐기하는 방안, 그리고 핵미사일은 폐기하되 ICBM은 유지하는 방안을 가정하여 3가지 시나리오 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고, 결과적으로 핵 미사일과 ICBM을 모두 폐기하는 방안을 결정하였다.

각서의 당사국중 하나인 러시아는 2014년 크림 위기 당시 각서 위반이라는 미국 등 각국의 비난이 잇따르자, 유로마이단 자체가 미국의 사주로 일어나서 합법적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부를 몰아낸 쿠테타인만큼 본 각서 제1항(우크라이나의 독립성, 주권 보장)을 위반한 것은 미국 본인들이며 각서 체결 당시(1994년)와 달리 현재 우크라이나 안보 상황은 급변하였으므로 각서 제6항에 따라 새로운 약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국이 벨라루스에 가한 경제적 제재(2013년)와 빅토르 야누코비치 치하의 우크라이나에 가한 경제적 제재는 본 각서 제3항(경제적 위협 금지)를 위반한 것으로 각서 위반자는 오히려 미국이라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이다.

2022년 2월 2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러시아군을 진격시키면서 우크라이나 내 친러 분리주의 미승인국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우크라이나의 존재를 부정해버리는 연설을 했는데 이는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를 무력화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