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의 영웅, 김오랑 중령
1979년 12월 12일 밤, 김오랑 중령은 육군특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서 12·12 군사반란 진압 중 전사했다. 그의 마지막 통화는 아내에게 남긴 "오늘 저녁도 못 들어갈 것 같아, 미안해"라는 말이었다. 그 후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진실은 은폐되고 있었다.
은폐된 죽음과 왜곡된 진실
김오랑 중령의 죽음은 당시 군사정권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었다. 그가 반란군에 의해 집중 사격을 받고 사망한 사실은 숨겨지고, 오히려 김 중령이 먼저 총을 쏘았다는 거짓말이 퍼졌다. 반란군은 증거를 감추기 위해 현장을 훼손하고, 총격 흔적을 지우려 했다. 이로 인해 김 중령의 죽음은 오랜 시간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왜곡된 채로 남아 있었다.
가족의 고통과 국가의 무책임
김오랑 중령의 가족들은 그의 죽음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2년 후 숨졌고, 큰형은 이듬해 사망했다.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실명했고, 결국 전두환·노태우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던 중 1991년 실족사했다. 가족들은 국가의 은폐와 무책임으로 인해 더욱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영화 '서울의 봄'과 진실의 재조명
영화 '서울의 봄'은 김오랑 중령의 이야기를 재조명했다.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은 김 중령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영화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12·12 군사반란의 진실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렸다. 영화 덕분에 김 중령의 억울한 죽음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죽음이 전사로 인정되었다.
전사 인정과 45년 만의 국가 상대 손배소
2022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김오랑 중령의 죽음을 순직이 아닌 전사로 바로잡았다. 이로 인해 그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중령 사망 45년 만에 유족들은 국가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그의 사망 경위 조작·은폐·왜곡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했다.
국가의 책임과 배상
김오랑중령추모사업회의 김준철 사무처장은 "군사반란에 적극 대항했던 한 군인의 죽음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과거 군사 반란 당시 반란군에 저항하다 숨진 정선엽 병장의 유족에게 2,000만 원씩 총 8,000만 원의 배상을 명령한 바 있다. 이는 김 중령 유족의 소송에서도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김오랑 중령의 유족과의 인터뷰
김 중령의 조카 김영진씨는 "삼촌의 죽음이 전사로 인정된 것이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고, 영화 덕분에 억울함이 널리 알려진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유족들은 국가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김 중령의 죽음을 바로잡아 주기를 바랐다.
끝나지 않은 유족의 싸움
유족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오랑 중령의 죽음이 전사로 인정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족들은 김 중령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완전히 밝혀내고, 국가가 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단순히 김 중령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군사반란과 관련된 많은 이들의 억울함을 푸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오랑 중령의 죽음과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유족들의 싸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들의 목소리가 더욱 널리 퍼져,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