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에 영합한 건축가 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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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에 영합한 건축가 김수근


2022. 12. 17.

 

사실 김수근은 활동 시기가 시기였던만큼 왜색 논란 뿐만 아니라 독재정권에 영합한 건축가로 비판받는다. 김수근은 박정희의 측근 중 한명이자 불도저 시장이라고 불린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과 친분이 있어 독재정권 시절 국가 사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문제는 이 건축들 중 상당수가 독재정권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건축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깊게 들어갈 것도 없이 바로 보이는 예시가 구 치안본부(현 경찰청) 산하의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이다. 이전부터 악명이 높았고 1987년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 바로 그곳 맞다. 김수근의 공간 사무소에서 일한 바 있는 건축가 승효상은 "김수근 선생이 설마 사람을 고문할 용도인 줄 알고 설계를 맡았겠느냐"며 선배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시대상황상 대공분실에서 민주 운동가들에 대한 탄압과 고문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만큼 김수근이 바보였을 리는 없다. 게다가 건축물의 디테일을 보면,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문화계 저명인사였던 김수근은 건물과 공간, 배치된 소품들의 용도를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나아가 설계의 방향이 그 효율을 최적화 및 극대화시키기 위함이었다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공분실은 기능적인 면에서 고문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고문실로 사용된 5층의 창문들은 극단적으로 좁게 설계되어 있고, 복도를 따라 마주보는 방의 출입문들이 서로 어긋나게 열리도록 되어있다. 모든 방에 욕조를 설치하여 물고문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설계되어 피고문자가 몇 층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 즉, 김수근은 처음부터 사람을 고문하여 그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는데 최적화된 설계를 한 것이다. 또한 외부에서 내부를 감시하기 위해 방문마다 거꾸로 뚫은 외시경(방범렌즈)에는 나름대로 예술성을 부여하고자 무늬를 새겼다.

그가 독재정권의 프로파간다에 적극 동참했다는 또 다른 예시로 1963년 반공 이념의 총본산으로 건설된 자유센터가 있다. 북을 향해 돌진할 듯 한 파도의 형상을 담아냈다. 그는 당시 발견된 한양도성 돌들을 전부 축대로 사용하는 문화재 파괴를 저질렀다.

이렇듯 김수근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가 건축을 통해서 독재정권의 이념과 사상을 구현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시민과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김수근이 살던 시대는 반대자들에게 억압을 하던 시대로 고문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독재정부까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던 수사방식이었기에, 그를 비판하는 것도 오늘날 인권이 보장받는 시점에서 평가하는 시각이며, 오히려 그 당시에는 대공분실이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수감자를 고문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을 것이라고는 본인도 몰랐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당시 김수근은 단순한 일개 건축가가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대표적 후원자이자 당대의 유명인이었으며, 건축계의 '큰 손'이기도 했다. 골방에 틀어박혀서 설계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김수근이 1961년에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차리고 독립한 이후로 그의 건축 사무소에 매년 서울대 건축과 출신의 전도유망한 건축학도들이 줄줄이 입사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특히 1974년부터는 국민대학교에서 건축과 교수로 재임하며 10월 유신과 유신 반대 투쟁을 대학 학내에서 목격했다. 특히 1979년부터는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하며 서울의 봄과 12·12 군사반란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건을 모두 가까이에서 경험했음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가 대공분실에서 고문이 행해지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불과하다. 특히 김수근은 설계도와 설계도상의 시방서를 꼼꼼하게 작성하기로 유명했는데, 끔찍한 고문을 위해 준비된 이 모든 구조와 장치들이 설계 단계에서부터 그의 손에서 치밀하게 기획됐다. 각 취조실마다 배치된 물고문용 욕조의 위치와 크기 하나하나 까지도 말이다.

대공분실 건물은 ‘OO해양연구소’로 불리는 건물이었는데 나선형 철제 계단은 철거하면 상층부로 화물을 오르내릴 수 있는 실내 크레인을 사용할 수도 있는 수직 공간이다. 고문실에서 어느 고문자가 교회당에 길다란 창문을 고문실 창문에서 연상하는 장면이 어느 영화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