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몰아내고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는 저주가 두려워 자신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족족 집어삼켰던 농경의 신 '크로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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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몰아내고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는 저주가 두려워 자신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족족 집어삼켰던 농경의 신 '크로노스'


2023. 5. 14.


크로노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티탄 신,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아들이다. 자신의 누나인 레아와 결혼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3남 3녀들이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 포세이돈, 하데스, 제우스다. 즉, 올림포스 3주신의 아버지. 켄타우로스이자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영웅들을 가르친 케이론도 크로노스가 오케아노스의 딸 필리라를 겁탈하여 낳은 아들이다.

'농경'의 신으로, 이 때문에 아다만트의 낫 스퀴테를 들고 있다. 후대의 해석에 따르면 이 아다만트는 철기를 상징한다.

남자 형제로는 형들인 오케아노스, 코이오스, 히페리온, 크리오스, 이아페토스, 남동생들 혹은 형들인 브론테스, 스테로페스, 아르게스, 코토스, 브리아레오스, 기에스가 있다.

우라노스에게 불만을 품은 아내 가이아는 우라노스와의 자식들 티탄 중 우라노스를 무찌를 자가 누구냐고 묻지만 다들 겁을 먹어 물러나고 유일하게 나선 게 막내 아들 크로노스.가이아의 지시에 따라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며, 이때 도망가던 우라노스의 양물을 낫으로 잘라내었고 그 양물이 바다에 빠지자 거품이 일어나며 아프로디테가 태어난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이렇게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형제들인 퀴클롭스들과 헤카톤케이레스를 타르타로스에서 구출하라는 가이아의 명령을 무시했고, 이 때문에 가이아에게 자신이 낳을 아이들이 자신을 몰아내고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는 저주를 받았다. 그 때문에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족족 집어삼켰으나, 속임수에 넘어가 막내인 제우스는 삼키지 못했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무사히 장성하였고, 그는 메티스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에게 먹은 것을 토하게 하는 약을 먹이는 계책을 써 자신의 동생들을 구하고 티타노마키아에서 승리하여 크로노스를 몰아냈다. 크로노스가 축출된 이후 농경은 데메테르가 담당하게 된다.

로마 신화에서는 사투르누스(Saturnus)와 동일시되며, 사투르누스는 유피테르(제우스)에게 쫓겨난 후 사투르니아라는 도시를 세워 라티움 민족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지배시기가 "황금의 시대"였다는 해석때문에 그리스에서는 잔인한 아버지로 여겨졌던 크로노스가 로마에선 덕이 있는 군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사투르누스는 영어권으로 오면서 새턴(Saturn)이 되었으며, 토요일을 뜻하는 Saturday는 사투르누스의 영어식 표기로 '새턴의 날'이라는 의미였다. 다른 요일 이름은 자연물인 해와 달을 빼면 전부 북유럽 신화의 신들인 티르, 오딘, 토르, 프레이야의 이름을 따왔는데 혼자 로마 신화신이면서 요일 하나 꿰차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의 취급을 생각하면 로마에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농경의 신인 크로노스(Kronos 또는 Cronus)와 시간(時間)의 신인 크로노스(Chronos)의 이름이 비슷한데, 이름이 비슷한데다가 시간의 신 쪽의 비중이 워낙 적었던 탓에 둘의 이미지가 섞이는 경우가 있다. 그리스어로는 두 신의 이름의 철자가 완전히 다르지만(농경신은 Κρόνος, 시간신은 Χρόνος), 카파와 키의 발음이 비슷하다보니(고대 그리스어 기준) 이런 혼동이 생겨난 모양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농경신 크로노스가 시간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의 담당 분야가 농경이 아니라 시간인 줄 알고 있으며, 아예 그냥 시간의 신 취급을 하고 있을 정도. 일례로, EBS의 국어듣기 교재에는 크로노스가 고대 그리스 때부터 시간과 농경의 신이었다고 나와있다.

이는 비단 현대에 들어와서의 일만은 아니며,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단 하나의 크로노스신만이 등장하는 등 이미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두 신은 혼동되고 있었고 동일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이 대낫이 곡물이 익게되면 낫으로 베어 수확하듯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살아있는 존재는 언젠가 반드시 죽게되는 존재의 유한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면서 결국 서양에서 시간의 의인화는 대낫을 든 늙은 노인의 형상을 한 'Father Time'의 이미지로 정착되었다. 서양의 사신 '그림 리퍼'가 수확용의 대낫을 들고있는 것 역시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찾아오는 죽음의 이미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덕분에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잡아먹어 시간을 멈춘"이라는 우화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추방함으로써 시간을 이겨 그 후 신들이 영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생겨났다. 또 하나는 목성 - 토성 - 천왕성이 이로써 제우스 - 크로노스 - 우라노스의 삼대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 농경에는 씨뿌리기부터 수확까지 시기를 잘 따져야 하는 면이 있기도 하니까 시간도 함께 관장한다고 가져다붙여도 그리 무리한 설정은 아니다. 낫이 상징하는 의미를 생각해도 연관이 있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는 아들 제우스에게 아내인 레아를 NTR 당한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쫓아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어머니인 레아와의 동침이었다. 레아는 뱀으로 변해 도망치려 했지만 제우스가 따라잡아서 억지로 동침했다. 이 전승에 따라 제우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페르세포네. 참고로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레아와 데메테르는 모녀관계가 아닌 동일인물로 취급받는다.

질투가 굉장히 심해서 우라노스에 의해 후계자로 지목된 형 히페리온을 테이아를 제외한 다른 남매들을 선동해 죽여버리고 조카인 헬리오스를 오케아노스의 아들인 에리다누스가 다스리던 강에 떨어트려 살해했고 오빠를 잃어 슬퍼하던 셀레네를 크로노스가 간접적으로 죽였다.

내로남불이 심했단점에서 제우스가 가장 크로노스를 상당히 닮았고 그다음은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닮았으며 헤라도 크로노스를 닮은 부분이 조금씩 있었다.

농경의 신이라서 약해보이지만, 제우스의 윗 세대 신인만큼 당연히 제우스보다 강하다. 티폰과의 첫 전투에서 그냥 당해버린 제우스와는 달리 싸움을 성립시켰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형제들의 도움을 받은 게 아직 제우스가 절대신이 되기 전이라고는 해도 티폰과의 전투에서 묘사되었듯이 제우스가 절대신이 된 시점이라도 1:1로 이기는 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애초에 고대 그리스에서 농사는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이었다. 그걸 관장하는 신의 권능이 약했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