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을 인질로 잡은 역사상 최악의 인질극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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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인질로 잡은 역사상 최악의 인질극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2004년 9월 1일부터 9월 3일까지, 샤밀 바사예프가 지휘하던 이츠케리아 체첸의 독립운동가 내 과격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러시아 북오세티아 자치공화국의 베슬란 1번 공립학교에서 발생한 일련의 대참사.

인질의 규모나 사태 결과로 보았을 때, 전세계 역사상 최악의 인질극으로 손꼽히는 사건이다. 다른 테러 사건에서는 최소한 어린이들은 풀어주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이 사건은 범인들이 처음부터 미성년자들이 절대 다수인 학교를 무력 점거해서 어린이들을 인질로 잡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 사건의 장본인들은 어떠한 사유로도 미화될 수 없는, 체첸의 독립을 핑계로 어린이들마저 거리낌없이 죽이면서 자기들 대리만족이나 이루고자 한 미치광이들이었다. 애초에 그 출신 성분만 봐도 체첸 독립운동을 했던 자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혹은 그들에게 포섭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중심이었다. 즉, 애초에 체첸 독립 운운한 것 자체가 본인들의 미치광이 짓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장 주동자부터가 그 이슬람 극단주의파 중에서조차 과격파 종자로 분류되는 사밀 바사예프였고, 당시 도주 중이었던 체첸 독립 운동 지휘자이자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스하도프는 이런 악질적인 테러, 인질극 행위로 독립을 쟁취하기보다는 정식 정부를 상대로 한 전투나 협상으로 독립을 쟁취하려고 애쓴 온건파였다.

이 사건과 뒤이은 마스하도프의 죽음으로 체첸의 독립 시도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던 서방도 등을 돌렸다. 이 상황에서 아무리 러시아가 싫어도 어린이 살해범들을 편드는건 어떤 이유로도 절대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미국은 9.11테러를 겪었으니 절대로 응원해 줄 수가 없었다. 대한독립군의 경우 일본 상대로 독립운동을 한적 있었으며 수뇌부 상대로 저격을 했지 민간인 상대로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포츠담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인정해 준 반면 이쪽은 이슬람이란 이유로 극단주의도 포섭했고 그 결과로 극단주의자들이 민간인 상대로 테러를 자행했으니 독립을 인정해 줄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의 주범인 샤밀 바사예프는 체첸 고유의 수피즘 계열 세력 출신으로, 그 이슬람 학파 중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의 토대가 된) 극단성으로 악명높은 와하브파에 물든 파벌이었다. 이 작자가 저지른 또 하나의 병크는, 와하비즘에 정신 팔려 애먼 옆동네 다게스탄 공화국을 건드려서 2차 체첸 사태를 유발했다는 것. 이미 1차 체첸 사태에서 얻을 만한 것은 다 챙겼음에도, 정말로 쓸데없는 저 짓거리 한방에 체첸을 거의 말아먹었다. 당연히 2차 체첸 사태 당시 바샤예프에 대한 반응은 체첸인들에게서조차도 최악이었으며, 바샤에프의 부하들도 시민들에게 엄청난 폭력과 악행을 수시로 저질러서 체첸인들도 엄청나게 분노했다.

문제는 체첸 반군의 수장이긴 해도 마스하도프의 힘은 매우 약했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베슬란 인질극 소식을 접하자 러시아와 협상해서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고 직접 테러리스트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학교 건물이 폭파되는 바람에 설득이 무위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2005년에 사살되었고, 샤밀 바사예프는 2006년 러시아의 공작으로 운송 중이던 폭발물이 터져 폭사했다.



<어린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약을 설치하는 테러리스트>



사건 발생일인 9월 1일은 개학일로,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 교사들이 학교에 모여 있었다. 당일 오전 9시 15분 무렵에 32여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난입하여 학교를 점거하자 1천여 명이란 엄청난 규모의 민간인이 인질로 잡히게 된다.

이들 테러리스트들은 사전에 학교 치안을 담당하던 경찰관들을 3일 전에 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항할 가능성이 있는 성인 남성들을 따로 분류해서 감시하였고, 이때 아동 인질에 대해 반대를 주장하며 애들만은 모두 풀어주고 어른들만 인질로 잡자고 하던 일부 양심있는 여성 테러리스트들이 동료들과 격하게 다투다가 그들 중 1명이 가지고 있던 폭약을 다른 미치광이 동료들이 기폭시키자 그 폭발로 해당 여성 테러리스트들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그나마 중상을 입은 몇 명의 생존자들도 배신죄라며 살해당했다. 화풀이로 성인 인질 몇을 데려다가 폭탄으로 폭사시키는 일도 있었다.

인질들을 모아둔 체육관에는 대량의 폭약을 설치하였다. 기폭 장치는 범인들 중 한 명이 그 위에 서있다가 모종의 이유로 내려서게 되면 폭발하는 장치였다. 사실상 죽음을 각오한 데드맨 스위치인데, 이 범인들의 상당수가 체첸 사태 와중에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테러리스트의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AK 소총 이외에도 PKM 기관총과 유탄발사기, RPG-7 같은 대전차 무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비겁하게도 러시아군 저격수의 조준 사격을 막으려는 의도로 인질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또한 이전에 모스크바 인질극에서 사용된 수면가스를 염두하여 건물 내의 창문을 가능한 한 전부 깨부수고, 위치 추적도 못하게 인질들의 휴대폰을 전부 빼앗아 파기해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테러범들을 제압하려고 출동한 지역 경찰들은 진압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총격전에서 압도당하여 역으로 패하고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인질들을 최대한 보호하려 했던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사건과 달리 극도의 잔인성을 보여 남성 인질을 몇 명 골라내어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이유만으로 죽여 창문 밖에 집어던지는가 하면, 인질들에게 오세트어를 쓰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러시아어만을 쓰게 했다. 그리고 이를 오세트어로 통역해준 사람을 오세트어를 썼다고 그 자리에서 총살하는 행각을 저질렀다.



사건이 발생한 북오세티야 공화국은 총기 소지가 자유로웠다. 때문에 1천 명이 넘는 인질들의 가족, 친척들이 민병대 출신이나 현역 민병대라서 직접 총칼을 들고 학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에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달려온 무장한 시민들도 참여하여 규모가 대략 5,000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흥분한 가족들이 당장 어린이들을 석방하라고 큰소리로 욕하면서 사유 총기로 공격을 시작하자, 이에 겁먹은 테러리스트들은 더 이상 사격하면 어린이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적반하장식으로 위협하였고, 이에 주민들은 인질들의 안전을 우려해 일단 물러나서 학교를 포위했다.

당시 계절이 9월로 아직 상당히 더운 날씨였고, 학교 내부는 공간 자체도 좁은데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 체온 등으로 창문을 모두 깼음에도 상당히 더웠다. 테러리스트들은 외부에 수시로 물과 식량 등을 요구해서 받아냈으나, 자기들 배만 채울 줄 알고 인질들에게는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때문에 더위를 참지 못한 상당수의 인질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옷을 벗어서, 기록 사진 등에 속옷만 입고 있는 희생된 인질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지역 경찰의 진압이 실패한 것을 계기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러시아 정부는 군대와 경찰,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테러범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학교를 포위했다. 그 다음엔 협상팀을 보내 아이들을 풀어주는 대신 인근에서 자원한 성인 남성들로 인질을 교환하는 척하며 속여서 진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9월 3일 러시아 비상대책부소속 의료팀 4명이 두 대의 구급차를 이용해 학교 건물 바깥의 시신 20구를 인계하고 사망한 테러범의 시신을 학교 안으로 전달하는 내용이 합의되었고 구급차가 도착했다. 테러범들도 여성과 어린이 31명을 우선적으로 풀어줬다.

그러나 당일 오후에 갑작스럽게 학교 건물에서 알 수 없는 폭발이 발생하였으며, 이에 놀란 테러리스트들은 건물 밖으로 무차별적 총격을 가했으며, 구급차에 타고 있던 구조대원 2명이 차량을 관통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13시 5분엔 두번째 폭발음과 함께 지붕에서 불길이 치솟고 불타는 건물 잔해가 체육관에 모여 있던 인질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는데, 잔해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지만 지붕 전체가 붕괴되면서 체육관은 불지옥으로 변했다. 이 불길은 16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 총 사망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의 인명이 사망했다. 러시아군과 러시아 국가경찰, 내무군은 폭발과 의료인과 인질을 포함한 162명의 사망으로 협상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즉각 전투에 들어가게 된다. 이 전투에 인질들의 가족이었던 민병대들도 참여했다.



폭발이 일어난 이유에 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는데, 러시아 정부는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잘못 다뤄 폭발이 일어났고, 당시 해당 지역의 민간인들이 총기 사격을 시작하여 우발적으로 사태가 확산되었다고 말했다. 옆에 있는 나라 때문에 거주민들 중 일부가 민병대라서 총기를 보유했다. 일부 다른 주장에서는 러시아군이 먼저 대전차 로켓을 발사하였단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폭발로 인해 러시아군과 경찰이 크게 당황하면서 로켓을 발사하였다는 반론도 있다.

폭발 이후 일부 인질들이 그 틈을 타 탈출하기 시작하였고, 테러리스트들은 아무런 저항 수단도 없는 이런 인질들에게조차 마구잡이로 악의적인 총격과 수류탄 투척을 가했다. 러시아군과 경찰, 내무군은 인질들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 대응 사격을 시작했다. 결국 테러리스트들과 러시아군, 경찰, 내무군의 교전이 시작되었고, 대기하던 BTR 장갑차가 14.5mm 기관총을 갈겨대며, 심지어 현장에 출동했던 T-72 전차도 6발 정도의 고폭탄 사격을 가했다. 이 125밀리 활강포의 고폭탄 사격에 맞은 테러리스트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서 죽었다.

최소 한 대의 Mi-24 공격 헬리콥터를 포함한 무장 헬리콥터들도 가담하여 사격을 했다. 그 다음 러시아군 대테러 특수부대가 건물 내로 진입하여 40분 동안 처절한 총격전을 벌이며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해갔고, 테러리스트들도 이에 맞서면서 참혹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때 화염으로 인한 연기와 콘크리트 분진 등으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제한적이었으며, 테러리스트들도 러시아군과 비슷한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군들은 오인 사격을 방지하기 위해 오른팔에 피아식별용으로 흰색 천을 묶었다. 문서 상단의 사진을 보면 왼쪽 두번째 군인의 오른팔 팔꿈치에 천이 묶여 있는 것을 볼수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수많은 인질이 희생되었다. 특히 테러범들은 비겁하게 인질을 방패로 사용하면서 저항하였는데, 이는 인질들이 많이 사망한 원인이 되었다. 건물 안팎으로 사격이 끊이지 않으면서 인질들을 억류해 놓았던 체육관 지붕 시설에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격심한 총격전과 화력 투사로 소방차가 건물로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결국 지붕이 화재로 무너지며 총 사망자의 절반 수준인 170명의 인질이 불타는 건물 내부에서 그대로 압사당하거나 질식으로 숨졌다. 인질극이 시작된 지 52시간 만이었다.

결국 334여 명의 인질이 사망하였는데, 그 중 180여 명은 어린아이였다. 게다가 부상자도 783여 명으로, 사실상 모든 인질이 죽거나 다쳤으며 부상자 상당수가 팔이나 다리를 잃는 등 중상자들이었다. 특히 부상당한 인질들이 입원한 베슬란 병원과 블라디카프카즈 병원의 침대 및 의약품, 의료 기기가 부족하니 그곳에서도 많은 수가 사망하는 참극까지 벌어져 사망자 수를 더 늘렸다. 진압 도중에 민병대와 경찰, 군인, 의료인을 포함한 10명과 특수부대원 10명도 사망했다. 작전 지역 주변 통제가 제대로 안 되었던 데다가 제대로 훈련 안된 정규군, 무장 경찰, 민병대들이 대거 투입되어 혼선이 발생했다. 게다가 인질 구조 훈련을 받은 대테러 특수부대인 스페츠나츠도 아직 작전 계획도 제대로 못 세워놓은 상태로 투입된 상황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생포된 1명의 테러리스트를 제외하고 전원 사살되었다. 이 과정에서 테러범들과의 교전이 어찌나 치열했던지, 사살당한 테러범들의 시신은 단 한 구도 온전하게 남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죽은 테러리스트의 시체를 테러리스트들의 잔인한 악행에 분노한 특수부대원들이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들리는 미확인 소문으로는 살해된 어린이들의 가족이었던 민병대들과 일부 무장 시민들도 분노하여 테러리스트들의 시체를 훼손해서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진압 직후에는 3명의 테러리스트가 생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으나, 진압 1년 후에는 누르파시 쿨라예프라는 테러리스트만이 생포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사진에서 농구 골대에 달려있던 대형 폭탄은 다행히 터지지 않았는데, 포로로 잡혀 있던 군인 출신 학부모 한 명이 자신의 뒤로 지나가는 선이 기폭선을 알아채고 3일에 걸쳐 몰래 끊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폭탄까지 터졌으면 인질들은 탈출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사진에서 보듯 테러범들이 쓰잘데기없이 정교하게 폭탄과 함정을 설치해 놓은 터라 도저히 정상적인 진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일단 분노한 무장한 베슬란 시민과 지역 민병대 5000여 명이 테러범들을 죽이겠다며 손에 총과 칼, 공구들을 들고 몰려와 흥분한 채로 포위하고 있었기에 이를 일단 안심시키려고 현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정부군 측이 전차와 장갑차량을 동원한 것도 무차별 사살이 아니라 벽을 뚫고 진입로를 확보하여 안전하게 인질을 호송하기 위해서였지만,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그 용도로 제대로 쓰이지도 못했다. 러시아 내무군들이 Mi-24 공격헬기나 BTR 시리즈를 사용하는 걸 보고 범인과 인질을 모조리 갈아버리는 나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들에서 경찰들이 이런 중장비를 운용하는 건 흔한 일이다. 애초에 저런 악질 테러범들이 날뛰는데서는 저정도 군사장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 경찰 역시 장갑차를 사용하는데, 물론 기관총 등 살상 장비들은 제거된 상태로 운용된다. 일명 ERV로 불린다.

또한 러시아군 역시 인질들이 총에 맞지 않도록 맨몸으로 화망에 뛰어들어 표적이 되거나 방패가 되어 전사하는 등 눈물겨운 희생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테러리스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대의명분이 완전히 러시아 쪽으로 돌아서 버렸다. 애초에 어린이들을 인질로 삼고 마구 살해할때부터 테러리스트들의 대의 명분은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 러시아군 군인들은 인질들에게 날아오는 총알들을 몸으로 막거나 어린이를 포함한 인질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류탄을 덮어 희생하고, 인질을 감싸고 엎드려서 인간방패 역할을 하는 등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또한 주변에 모여든 베슬란 무장시민들과 민병대 역시 사태가 너무 악화되고 곳곳에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오자, 위험을 감수하면서 들것을 들고 다니며 군인과 경찰을 도와 인질들이나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등의 훌륭한 시민의식을 보여 주었다. 또한 목숨을 걸고 테러리스트와 총격전에도 참여했고 최선을 다해 도망치는 인질들을 엄호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병대 출신 사상자들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1,200명의 인질 가운데 334명이 사망했고 그 중 156명이 어린이였다. 여학생들의 나체와 널브러진 시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방송한 대한민국 방송가에 대한 비판이 많기도 했다. 당시 방송가는 의외로 폭력성이나 선정성 등에 이상한 방향으로 무감한 면이 없지 않았고, 지금 같았으면 모자이크를 넘어 검열될 영상들을 9시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는데, 이후 지속된 비판과 이런 쪽으로 민감해진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사라지게 된다.



투입된 특수부대원들은 인질을 최대한 많이 구출하려고 애썼고, 총기를 난사하는 테러범의 공격으로부터 아이들을 몸으로 감싸다가 부상 또는 순직했다. 전사자의 수는 공식에서도 왔다갔다 하지만, 10여명에서 최대 20명 가량까지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정예 특수부대인 알파와 빔펠의 지휘관 3명이 죄다 작전 중에 직접 나서서 인질을 구하려다 순직했다. 베슬란 특수부대 위령비에 10명의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수류탄을 몸으로 덮거나 인질에게 날아오는 총알을 몸으로 막는 등 살신성인 정신을 보여준 군인이자 영웅이다. 그리고 위령비에 올라온 전사자의 계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단도 아니고 준위, 영관급의 고위 간부들이 죽어나갔으며 이들 중에는 부대 최고 지휘관도 있다. 특수부대 특성상 평균 계급이 높다곤 해도 지휘관급 전사자도 많기 때문에 위아래 할것 없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 전체가 충격을 받았고, 테러범들의 동족인 체첸인들조차 경악하고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리고 체첸 독립군들에게 엄청난 악영향만 미쳤고 체첸 독립군들 대다수도 저놈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엄청나게 분노하며 비판했다. 이전에도 체첸은 인질극을 몇 번 벌였지만,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은 무조건 전원 석방했고, 테러 역시 가급적 러시아군이나 친러시아 체첸 인사들 상대로 그것도 군인이나 정치 요인만을 상대로 저질렀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 전까지 무조건 석방시키던 부녀자와 아이들을 인질로 붙잡았다는 점에서 이미지가 일단 깎이고 들어갔다. 더군다나 이전의 인질극에서 체첸인들은 되도록이면 인질을 죽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이번에는 자기들 마음에 안들면 인질을 마구 쏴죽이거나 폭사시켜 사실상 학살에 가까웠다. 심지어 어린이들을 인질로 삼는걸 끝까지 강력히 반대한 자기편 동료들까지 폭탄으로 죽여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인질 구조가 어려운 상황에서라면 협상을 잘 하든가, 작전 수립하기까지 최대한 시간이라도 끌어야 했는데, 정작 러시아 정부측에서 협상에 시큰둥했다는 게 밝혀졌다. 러시아 정부가 일부러 인질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음모론이 힘을 얻었던 것도 이 때문. 하지만 당시 인질극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제대로 없어서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모스크바 사태 때와는 다르게 체첸 반군은 애들까지 인질로 잡는게 너무하다고 주장하며 끝까지 반대한 동료까지도 몰살시키는 등 이미 자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폭주하는 완전히 미친 상황이었다. 즉, 이미 협상이라는 것 자체가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던 것. 게다가 당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방침이 《테러와는 협상 없다》였음을 고려하면 협상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숱한 테러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 소수 민족의 독립 운동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고, 이슬람권에서도 나름대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졌던 체첸 분쟁은, 이 사건으로 차츰 러시아 vs 테러리스트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래도 이미지 관리 차원인지 샤밀 바사예프는 2005년의 인터뷰에서 베슬란의 비극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히기는 했다지만, 본인이 죄 없는 어린이들을 죽여버리라고 지시하고 그걸 반대하는 자기 편 동료들까지 폭탄으로 죽여버린 상황인데 이런 변명 따위가 통할 리 없다. 1992년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때 무자헤딘으로써 휘하 체첸인 부대를 이끌고 참전했을 때도, "그의 부대가 수백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강간하는 것은 물론, 그걸 녹화하는 걸 즐겼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하는 등 이들은 베슬란 이전에도 완전히 악질에 미치광이 였다.

그나마 대 러시아 저항의 상징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던 이츠케리아 체첸이 저런 만행을 저지른 것에 경악한 체첸 사람들 역시 이츠케리아 체첸에 대한 대한 기대를 접고 친러파인 카디로프 일가 체제에 적극 순응한다. 2005년엔 그나마 남아 있던 온건파인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러시아군 손에 전사해서 더 이상 붙어있을 독립 파벌도 안 남았고. 물론 개별적인 테러나 저항은 여전하지만, 이전처럼 적극적인 협력은 더 이상 받지 못한다. 체첸 수피즘 계열 반군 출신 체첸 대통령이던 아흐마트 카디로프(1951~2004)는 노골적인 친러 정책을 취하다가 폭탄 테러로 암살당했다. 현재 체첸 대통령인 람잔 카디로프(1976~ )는 그의 아들이다. 그가 다른 체첸인 지도자들과 달리 독재자이긴 해도 나름 성과가 있었던 것도 크긴 하다. 그는 체첸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가문 간의 다툼을 종식시켰고, 납치 결혼과 같은 악습도 금지했다. 사실 카디로프 이전의 체첸은 전근대적 씨족 사회+이슬람 원리주의가 자리잡고 있던 땅이었다. 그러나 노골적인 천러 정책으로 체첸 민족주의를 억압하고 러시아어를 강요하면서, 독립 지지까진 아니라도 체첸 민족주의자들 반발을 극렬하게 받아, 되려 푸틴에게 "너 아무리 친러시아적 행동이지만 러시아가 보기에도 너무 행동이 지나치다. 그러다가 정말로 죽고 싶지 않으면 체첸인들에게 어느 정도 서로 적당히 타협하고 양보도 해라"는 충고를 듣고 체첸어 중시 및 민족주의를 다독이는 민심 작전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팀인 FC 테레크 체첸스카야 레스퓨블리카(데렉 그로즈니로도 알려진)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첸 분쟁을 소수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보는 시각이 아주 사그라든 건 아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인질극 발생 1년 후 폴란드에서 이츠케리아 체첸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하르 두다예프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려고 하기도 했다. 폴란드가 러시아와 사이가 안 좋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다예프는 저 미치광이 테러리스트들보다는 훨씬 개념인이다. 적어도 어린이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행동은 전혀 하지않았다.

러시아 정부도 안 그래도 체첸에 대한 강경한 방침을 선회하기는 커녕 더 악랄하고 더 잔인하고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단적인 예로, 협상 같은걸 생각하지 않냐는 말을 들은 푸틴 대통령이 "죄없는 어린애들을 죽이는 미친자들과는 절대 대화하지 않는다."라고 언론에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실질적 독재 정권이고 인권 무시 논란이 많긴 하지만, 이 사건으로 체첸 반군이 애들을 악랄하게 죽이려 드는 미친놈들이라는 인식이 틀어박힌데다 완전히 인과응보에 자업자득인 만큼 저런 말을 당당하게 말해도 뭐라 할수도 없다. 다만 상술되었듯이 이 사건은 동족이었던 절대다수의 체첸인들도 진심으로 엄청나게 분노했으며, 이를 구실로 푸틴의 독재 기반을 더 탄탄하게 다지기 위해 일부러 스파이를 심어 이 사건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도는 근거가 되기도 했으나 거짓말이다.

또한 국내에는 자세한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 이후 경악한 러시아는 말 그대로 체첸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해 대대적인 보복전을 실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분노한 러시아 군에게 수많은 체첸인들이 또다시 떼죽음을 당했다. 어처구니없게도 희생자들 중 상당수는 반군과 관계도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이었다. 결국 자기들 또한 이 사건의 범인들과 똑같은 짓을 한 셈이나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의 악행 때문에 러시아 군인들도 왕창 분노한 상태니 무고한 체첸 민간인들의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해당 사건의 테러리스트들이 죽인거나 마찬가지다. 나중에는 분노한 러시아군 수뇌부조차 체첸 민간인을 상대로 한 지나친 보복성 전쟁범죄를 단속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

한편 유일하게 체포된 가담자인 누르파시 쿨라예프는 북오세티야 법정에 넘겨져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이 확정되었고, 시베리아에 있는 중경비 시설인 흰올빼미 교도소에서 알렉산더 피추시킨 등 다수의 흉악범들과 함께 수감 생활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