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쇼와 61년) 4월 8일, 일본의 아이돌이었던 당시 만 18세의 오카다 유키코가 투신자살한 사건.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밝혀질 가능성은 낮다. 이후 이 사건을 모방하는 식의 자살 사건이 빈번해져서, 일본 언론들은 "윳코 신드롬"이라고 칭한다.
1986년 4월 8일, 정오를 넘긴 12시 20분 경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었다. 아이돌 오카다 유키코가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숨졌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사람의 통행량이 많은 대낮 신주쿠 요츠야의 자신이 소속돼있던 선뮤직 건물 7층에서 20m 아래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사실이었다. 오카다 유키코가 자살했을 당시 건물 1층에는 점심 시간이라 사람들이 가득찬 도시락 가게가 있었고, 더욱이 사망 당일 오전에 가스 중독 자살미수를 일으켰다는 것이 보도되면서 기자들도 다수 진을 친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의 충격적인 투신자살을 직접 눈 앞에서 목격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진을 치고 있던 기자 중 한 명은 검은색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해 순간 검은 물체의 쓰레기가 떨어졌다고 생각했고, 이내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주변의 목격자들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특종을 위해 잠복해있던 한 기자는 그녀의 사진을 얻어간다.
당시, 그녀가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누군지 식별을 하지 못해 "오카다 유키코의 매니저가 투신한 건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카다 본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시신이 수습되고 난 직후 보도를 듣고 전국에서 몰려온 수백명의 팬들은 사건 현장의 시신이 있던 자리에 모여 묵념하듯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고 이윽고 젊은 청년들이 울부짖는 현장으로 변했다. 그들이 가져온 꽃다발이 쌓이고 쌓여 2미터에 이르렀다. 황색언론 잡지인 프라이데이와 포커스는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않은 적나라한 시신의 사진을 날 것의 묘사와 함께 그대로 잡지에 실었다.
자살이 확실한 상황이라 검증만 했을 뿐 부검은 진행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고향인 나고야에서 유키코의 부모가 올라와 요츠야서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 날은 모든 방송에서 오카다 유키코의 죽음에 대한 기사와 방송이 밤까지 연이어졌으나, 단 한 곳 TV 아사히의 간판 뉴스 채널 '뉴스 스테이션'에서는 아나운서였던 쿠메 히로시가 "연쇄 반응을 일으킬 염려가 있기 때문에 자살 관련 보도를 절제하였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사건에 대한 보도를 일체 하지 않았다.
사건 직후 연예계에서는, 오카다가 첫 정규 출연을 했던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사회자가 오카다의 인물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며 추모 방송을 내보냈으며 그녀를 귀여워했던 선배 가수 콘도 마사히코와 나카모리 아키나가 출연해 눈물을 보였다. 음악 방송 '더 베스트텐'에서는 사회자인 쿠로야나기 테츠코가 시청자를 향해 “유키코씨의 밝은 미소가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유키코 씨, 정말 감사했습니다” 라며 눈물을 흘리며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고, 음악 버라이어티 '가요 깜짝카메라 대방송'은 그녀가 생전 마지막으로 녹화를 마친 방송이었기 때문에 추모하는 자막을 띄워 보냈다. 사건은 동년 2월 발생한 나카노후지미중학교 이지메 자살 사건과 맞물려 청소년 문제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일본 국회에서도 다루어질 정도였다.
이 후 "제 멋대로인 행동을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쓰인 유서에 대한 내용이 일부 노출되어, 유서 속에 남겨져 있던 것으로 보이는 배우 미네기시 토오루가 동일 밤 오후 10시 경 TBS 테레비의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키코의 시신을 수습했었던 미조구치 매니저는 유키코의 사후 후배 아이돌인 사카이 노리코의 매니저를 담당하다가 2000년(헤이세이 12년) 7월 8일, 유키코가 생전 마지막으로 들렸던 선뮤직 사무실 5층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앓고 있던 지병을 괴로워하여 목을 메어 54세의 나이로 자살하였다.
인기 아이돌 오카다 유키코가 왜 갑자기 스스로 삶을 포기했는지에 관해서는 35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자살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선뮤직 소속사의 후쿠다 전무는 방송에서 첫 번째 자살 미수 때는 연심이나 기타 사적인 일 때문에 고민하던 것이 원인이었으나, 두 번째 자살 시도는 자신의 자살 시도가 알려져서 사무소나 가족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심적 부담이 커진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하고 추측하였다. 그는 그녀가 사라졌을 당시 무언가를 직감하여 사내 건물을 돌아다니며 그녀를 찾았고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 계단 위에서 그녀가 신고 있던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생전 혼자서 고민을 끌어 안는 성격이었고, 자살하기 전부터는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이 잦았다고 한다.
그녀의 자살의 원인에 대한 일각에서의 의견 중엔 평소 풍부한 감수성을 소유하고, 때묻지 않았던 순수함을 지녔던 유키코가 일본 연예계의 추악한 일면을 알게 된 이후부터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갖고 있던 꿈과 환상이 깨져 버리는 바람에, 연예계 자체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이돌을 그만두려고 하였지만, 그녀를 세이코처럼 톱 아이돌로 육성시키고 싶었던 아이자와 사장의 격한 반대로 인해 은퇴가 무산되어 버리자 절망해 투신자살을 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생전에 근면성실하며, 굉장한 노력가라고 알려진 그녀가 연예계에 대한 실망, 연애 문제 등의 사유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오히려 과도한 스케줄로 생간 피로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얘기치 않게 휴일이 생기자 우발적으로 자살기도를 했다가, 사건이 너무 커지자 가족들과 소속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막대한 죄책감을 느껴서 자살을 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녀의 소속사 사장 아이자와 사장은 그녀의 일기장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는 분홍 종이에 쓰인 그녀의 '유서'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걸 가지고 대중들이랑 계속 보여줄까 말까 밀당을 했으며, 결국엔 단 한 번도 그 내용을 공개한 적은 없다. 심지어는 가족들도 이 내용들을 모른다고 한다. 아이자와 사장은 끝까지 이 유서 내용을 세상에 밝히지 않았고 2013년 췌장암으로 사망하였으므로 금고가 열어지지 않는 한 그녀의 자살 원인은 밝혀질 가능성이 이제 없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