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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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평가

They Dreamt, They Believed, They made it happen
꿈꿨노라, 믿었노라, 이뤘노라

그야말로 모든 경우의 수가 톱니바퀴처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실현된 기적이자 대한민국 축구의 쾌거였다. 자력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만큼 벤투호의 16강 진출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나, 이를 뚫어내고 카잔의 기적을 능가하는 '알 라얀의 기적'을 새롭게 만들어내며, 강팀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고 녹아웃 스테이지 진출에 성공했다.

전반전 5분 만에 1골을 허용하며 마지막 희망마저 꺼져가려던 시점에서, 마치 4년 전 기적처럼 김영권의 1골 이후, 후반 35분대~45분대의 포르투갈의 맹공을 받는 과정에서 다행스럽게도 포르투갈의 영점이 흔들린 틈을 놓치지 않았고, 끝내 손흥민의 어시스트로 황희찬이 1골을 더 올리며 2:1 역전승에 성공했다. 이 결과로 대한민국 대표팀은 2002년 이탈리아전, 2006년 토고전에 이은 세 번째 월드컵 역전승을 기록했고, 포르투갈 상대로 승률 100%(2전 2승)를 유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포르투갈은 이 패배로 인해 세계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대한민국에 2패를 당한 국가가 되었다. 또한 뚝심 있게 '우리만의 축구'를 고집하던 파울루 벤투 감독의 성과가 가장 큰 결실을 맺는 셈이기도 했다.

 


결국 위기에 몰리면 각성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저력이 또다시 발휘되었다.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은 경기 내내 슛이 수비에게 막히거나 턴오버를 기록하는 등 시원치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경기 막바지에 본인의 클래스에 맞는 플레이로 황희찬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으며, 막판에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경기를 뛰며 투혼을 보였다.

김영권은 김민재의 공백과 더불어 초반 실점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최후방을 있는 힘껏 최대한 사수하는 동시에 결국 지난 대회에 이은 동점골까지 만들어 내어 역전승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가나전에서 부진했던 김승규는 적극적인 선방으로 첫 실점을 제외하면 온갖 위기 상황을 안정적으로 커버했다. 2018년 독일전 당시 조현우가 떠오른다는 반응이 있었을 정도였다. 김승규는 이후 인터뷰에서 "가나전에서 전반 0-1과 0-2는 차이가 크다는 걸 느꼈고 버티면 기회가 온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권경원은 김민재의 빈자리를 잘 메꿨다.

부상으로 앞선 경기들에 출전하지 못한 국가대표팀의 슈퍼조커 황희찬은 들어오자마자 과감한 드리블로 수비진을 헤집더니 결국 역전골을 집어넣으며 영웅이 되었다.
조규성과 중원의 선수들, 양 풀백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쉴 새 없이 경합을 하고 수비 커버를 들어가면서 제 몫을 다했다.

정우영은 언성 히어로였다. 이번 대회 최고의 폼으로 뛰어준 데 이어 이날 후반에는 김영권 교체 후 조유민이 들어오기 전까지 센터백으로 뛰며 추가 실점을 막아냈다.선수 본인은 해당 상황에서 "버텨보자"는 마음가짐이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김영권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얻어맞고, 후반 막바지에 손흥민에게 공간을 허용하며 황희찬의 결승골로 패배했다. 전 경기의 대한민국이 그러했듯 측면에서 올라간 수많은 크로스와 스루패스가 수비진에게 모조리 차단당했다. 특히 선발 출전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공중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동점골을 내주는 원인을 제공하고 결정적인 헤더를 허무하게 날려먹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른 시간에 교체되었다. 경기 전에도 호날두가 예전만 못한 점과 경기 외적으로 구설수들이 나오는 걸 보며 '호날두가 출전 안하는 게 더 안 좋다' 라는 농담섞인 예측을 하는 이들도 간혹 있었는데, 이 말이 정말로 현실이 된 것. 경기 결과와는 별개로, 가나가 우루과이에게 패배했는데 제일 먼저 무난하게 16강을 확정지었던 포르투갈은 그대로 조 1위를 유지하며 브라질과의 맞대결을 피하게 됐다.

 


동시에 가나가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우루과이를 0:2로 묶어주면서 12년 만에 16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남은 대한민국의 카타르 월드컵 잔여 일정과 상관없이 이 경기의 승리만으로도 벤투호의 4년 간의 항해는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벤투호는 이 업적으로 4년간 자신들을 무던히도 의심하던 기자들과 해설진, 선출 유튜버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또한 경기력도르라는 조롱과 힘든 과정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보냈던 팬들에게 최고의 보답을 해준 셈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피파 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 요아힘 뢰브 독일의 충격적인 2:0 탈락을 가져왔던 카잔의 기적이 더 큰 사건일 수 있지만, 그때는 결국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했으므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 한정으로는 카잔의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978년 아르헨티나 16개국 본선 이후 외국인 감독이 이끄는 국가는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이어져 왔는데, 이번 월드컵에서도 (본 경기 전) 자국이 아닌 외국 국적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8개국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며 사실상 징크스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대표팀은 이를 보란 듯이 깨는 데 성공했다.

마음 편히 나온 포르투갈 백업 멤버들은 후반전에 거의 모든 면에서 체력이 바닥난 대한민국을 절망적으로 압도했으나, 결국 결정적인 순간 딱 한 번의 역습이 모든 것을 바꿨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대한민국전 2전 2패가 됐고 3년 전 날강두 사태에 대한 복수도 성취했다. 호날두는 전반전에서 적극적으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동료의 유효슈팅을 자기 몸으로 직접 막은 꼴이 되며 사실상 대한민국의 또다른 수비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프사이드도 몇 번 범했으며, 공이 호날두에게 몰리니 공격 루트가 읽히기도 했다. 공중볼도 제대로 못 걷어내 결국 대한민국에 골을 헌납하고 후반전 20분부터는 벤치 신세가 되면서 제대로 망신을 샀다. 잠시나마 일본에게 따였던 아시아 최다승(7승) 기록도 동률이 되어서 지켜냈다. 벤투는 명장으로 등극하면서도 조국 포르투갈도 16강에 갔으므로, 모두가 웃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비록 이번 경기로 대한민국에게 2전 2패라는 어떻게 보면 자존심 상하는 기록을 수립하게 되었지만,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와는 달리 2연승으로 16강 진출은 진작에 확정지었고 가나가 우루과이를 이기는 일만 없다면 조 1위 자리도 확고했기에 포르투갈 입장에서 이번 패배는 그렇게 크게 다가오는 타격은 별로 없는 셈이다. 더불어 지난 대회에서 일격을 맞은 우루과이를 이번 대회에서 탈락시키고 16강으로 올라가면서 12년 전 16강전의 복수를 해낸 셈이 되기도 했다. 포르투갈 대통령도 벤투 감독에게 축전을 보내며 대한민국을 16강에 보낸 자국의 벤투를 치하했다.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으로 치면 박항서 신드롬 수준의 행보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 2위와 조 3위가 결정되지 않았으니,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중 가장 극적인 죽음의 조라고 봐도 무방했다. 결국 확실한 강팀 한두 팀이 있는 조보다 포르투갈, 대한민국, 우루과이, 가나 등 모두 16강을 돌파할 여력이 있는 어중간한 강팀 여럿이 산재한 조가 진정한 죽음의 조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준 경기였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16강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AFC 소속 국가 가운데 호주, 일본에 이어 대한민국까지 세 팀이나 16강에 진출하며 역대 최다기록을 세웠고, 여기에 이란과 사우디도 1승씩은 거두면서 카타르를 제외한 모든 AFC 소속 팀이 승리를 기록하게 되었다. 또한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각 조 1위를 한 이란과 사우디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반면, 각 조 2위를 한 대한민국과 일본, 대륙간 PO까지 갔던 호주가 오히려 16강에 오르게 된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게다가 중동 세 팀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반면 태평양권 세 팀은 모두 16강에 진출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편 이 경기 결과 남북한 상대 동시 승리팀은 아직 나오지 않게 되었는데, 만약 16강 상대가 브라질이고 브라질이 승리한다면 그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반대로 대한민국이 승리한다면 브라질은 역대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 상대로 첫 번째 패배를 안게 된다.

예상대로 브라질이 16강 상대로 확정되었다. 대한민국은 통산 11회나 월드컵에 진출하며 수많은 강호와 만나 왔음에도 브라질과 잉글랜드 두 팀만은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로써 사상 처음으로 브라질을 월드컵 무대에서 상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