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 하나를 3억주고 산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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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하나를 3억주고 산 바보



전형필은 1906년 종로에서 조선 정3품 전계훈의 손자로 참서관을 지낸 전명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작은 아버지의 양자가 된다. 그러나 99칸 한 집에서 양부모 양조부모까지 사는 관계로 양육은 그대로 친부모가 맡았다. 이 배경으로 훗날 양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아 하늘이 내린 재산가 백만장자가 된다. 어의동 공립 보통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나라 잃은 백성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을 전공하지만 평생의 스승 위창 오세창을 만나며 민족의 혼과 얼을 지켜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우리 조선은 꼭 독립되네. 동서고금에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지. 그렇기 때문에 일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문화 유적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것일세."


전형필은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오세창이 건넨 근역화휘와 근역서화징으로 문화재를 감식하는 눈을 기른다. 겸재 정선의 인곡유거를 시작으로 본격 우리 문화 유산을 수집하는 데 헌신한다. 간송은 1900년대 초부터 일본인들의 손에 흘러 들어가거나 훼손될 위기에 처한 우리의 문화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 붓기 시작한다. 고서화 수집의 전진 기지로 한남서림을 인수. 이후로 고려 청자, 조선 백자, 돌로 만든 탑과 부도, 금동여래입상 등 그냥 보기 좋은 예술품을 지켜 낸 것이 아닌 예술적 가치를 넘어선 그 안에 담긴 우리 민족혼을 지켜낸 것이다. 특히 고려 청자의 대표작인 청자상감포류수금문정병(국보 제66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제68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국보 제270호)은 모두 전형필이 일본으로 팔려갈 뻔 한 것을 거액을 주고 사들여 지켜낸 작품들이다.


1940년대 일제는 조선어 사용 금지와 1942년 조선 어학회 탄압 사건 등 우리 민족 말살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43년 6월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전형필은 판매자가 천 원이라고 했지만 귀한 물건은 제 값을 치러야 한다며 당시 집 열 채 값인 만 원을 주고 천 원은 수고비로 주며 사들였고 한국전쟁 때는 몸에서 떼지 않은 채 지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귀한 것을 귀하게 보는 눈. 먼 미래까지 보며 내 나라를 지켜낼 방법을 알았던 그이기에 기와집 400채 값으로 영국인 개츠비에게 고려 청자와 조선 청화 백자 20점을 사고 이미 일본으로 넘어간 우리 문화재 특히 혜원 신윤복의 그림 '혜원 전신첩'을 찾아온다.

6.25 전쟁 때 인민군들이 문화재를 포장할 것을 명령하자 문화재들을 일부러 늦게 포장했다고 했다. 당시 북한군은 서울 점령 후 유물들을 평양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포장하라고 협박했는데, 북한군의 선전으로 인해 경계가 다소 약해진 것과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적은 점들을 고려해서 문화재 포장을 지연시켰다고 한다. 당시 간송 전형필은 모처에서 은신하면서 지냈고, 전형필 소장의 문화재들의 가치를 익히 알고 있었던 최순우 등의 도움을 받았다. 이미 포장한 유물들도 이런저런 이유들을 갖다 붙이면서 다시 꺼냈다 포장하기를 반복하고, 문화재를 나무 궤에에 담아야 한다며 궤짝이 제작되기까지 또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또 북한군에게 위스키를 주면서 경계심을 풀게 했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를 들키고 말았으나, 3일 만에 서울이 탈환되면서 이들은 결국 문화재를 챙기지 못한 채 평양으로 떠났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의 유언으로 현재 서울의 보성중학교, 보성고등학교를 인수하는 등, 교육 사업도 하였지만 1959년 엄청난 재정 사고가 발생, 그 빚을 갚기 위해 가족들까지도 극심한 쪼들림에 시달려야했다. 재단에서 빚을 갚지 못해 학생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 돈을 댔다. 사실, 서화와 도자기 몇 점만 팔았어도 해결하고도 남았겠지만 전형필은 끝까지 자신의 문화재 수장품들을 지켜 낸다.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재단의 빚을 모두 갚은 후 급성 신우염으로 쓰러져서 1962년에 만 56세로 사망하였다. 이후 보성중고등학교 재단 법인 동성 학원의 이사장직은 전형필의 후손들이 맡고 있다. 2018년 4월 6일 사망한 전성우 이후 새로 취임한 전인건. 둘 다 간송 전형필의 자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