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방부가 '포방부'로 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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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방부가 '포방부'로 불리는 이유

대한민국이 화력에 올인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한반도의 험한 지형에 어울리면서도 한정된 예산으로도 타 병종에 비해 더 큰 화력과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포병이어서 그런 것이다.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원거리 투사 무기에 집착한 이유는 지리적 환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지형은 평지가 적고 산세가 험하다. 과거는 물론이고 보급체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에도 장기적인 전면전을 치루기에는 쉽지 않은 지형이다. 이는 지형이 유사한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이 고전한 이유도 과거 식민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네팔 침공을 포기한 이유도 두 나라 모두 산세가 험하고 전쟁을 치루기 쉽지 않은 지형이기 때문이다. 일단 탱크가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고 공중에서는 나무때문에 식별이 힘들다. 나무를 폭격으로 갈아버려도 수지타산이 안맞는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일찍이 한반도 역사에 있었던 수많은 외세의 침략역사가 그렇고, 20세기부터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협인 북한군의 기본적인 작계 또한 전면전을 상정하지 않았다. 과거 한반도를 침공했던 이민족들은 최대한 속전속결을 목표로 했고, 이러한 적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육해공을 통한 양립작전 보다는 화력에 치중한 수성 전략이 항상 유효해왔다.

남북대립에서도 이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역시 전쟁을 대비해서 세운 기본 전략은 단시일 내에 수도권을 점령해서 남한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거나 주민을 인질 삼아 유리한 조건으로 정전을 끌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서울을 내주면 사실상 전쟁에 진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서울과 휴전선과의 거리가 불과 40km이기 때문에 후퇴하면서 기동 전투를 할 여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전 시 적의 포격을 좁은 공간에서 어느 정도 처맞을 수밖에 없어 방어하기에 굉장히 불리한 환경이다. 국군의 높으신 분들이 개인장구류 강화나 보병의 차량화에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것은 이것 때문이다. 북한은 이를 이용하기 위해 장거리 야포 세력을 키웠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북한의 포병을 견제하고 남하하는 인민군을 최대한 먼거리에서부터 두드리기 위해 장거리 화력 강화에 최우선적인 집중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공군의 지상 지원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양상에서 전면전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처럼 지상 공격용 항공 전력을 갖추려면 엄청난 규모의 경제력이 요구되는데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5,100만 명의 인구에 1인당 32,000달러의 국민소득을 보유한 국가로 그만큼의 요구는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공군이 지상 지원에만 신경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전 초 북한 공군 방어, 북한군 핵심 시설 타격 등 중요 임무에 종사하기 때문에 제공권을 장악하고 지상지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상대가 중국일 경우에는 지상 지원은커녕 제공권 지키기에도 벅찰 것이다.

지형적 이유도 있는데 한국군은 국민들이 살 수 있는 지역 대부분이 시가지 및 산악지대인 국가 특성상 대규모 포병이 전장에서 굉장히 효과적이다. 또한 한국군이 장차 맞서야 할 적도 비록 구세대 장비에 잔고장도 많겠지만 사람 죽이기에는 전혀 문제 없는 전차 수천여 대, 백만이 넘어가는 북한군, 나아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장갑집단군 전력이다. 이들을 상대로 가장 저렴하고 가장 확실한 방어 및 전선 돌파 수단은 결국 화력일 수밖에 없다.

적 기갑부대가 전진 중일 때 공군 전투기로 폭격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포병으로 직접 타격하는 것에 비하면 가성비와 화력면에서 현저히 밀린다. 적 전투기가 호위 비행할 수도 있고 또한 전투기의 미사일과 폭탄은 1회 출격에 사격할 수 있는 개수가 한정되어 있지만 포병의 경우 포탄 자체로 전차를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형을 전차 기동이 불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화력을 생각해봐도 전폭기 1기가 투사하는 화력과 자주포 1대가 지속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화력에 현저히 차이가 난다. 웬만한 전폭기가 폭탄 서너 발 떨구고 가는 것보다 자주포 1개 포대가 TOT 사격을 먹이는 것이 더 정확하고 강력한 타격을 기대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전폭기는 1회 소티를 뛰고 나면 기본 몇 시간 이상 걸리는 정비와 재무장 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자주포 포대는 상황만 허락된다면 지속적으로 수십, 수백 발의 포탄을 쏴서 적을 날려버릴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군은 확산탄의 운용을 절대로 포기하지 못한다.

현재 한국군은 출산율 감소로 인해 병력 규모가 아주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 확실하므로 최대한 병력 대비 전투력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고 또한 그걸 최대한 적은 돈으로 해야 한다. 포병은 이런 상황에서도 효과적이다. 돈은 적게 들고 화력은 엄청나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투사에 필요한 정찰 시스템 등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대규모 기갑 전력이나 항공 전력 보유에 비해서는 이를 고려하더라도 훨씬 싸게 먹힌다. 또한 항공 전력의 타격 역시 러시아나 중국처럼 정말 방공 체계가 조밀하게 짜여진 국가가 아니면 항공 전력을 활용하기보다는 순항 미사일 등의 탑재 수단이 더 싸게 먹힌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비교적 적은 인적/경제적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기 좋은 방법이 바로 포의 화력이다. 이는 처음 대포를 만든 때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수없이 많은 전장에서 포를 운용하며 검증한 사실이다.

밀덕후들 사이에서는 이런 한국군의 포병 강세의 성격을 두고 '서방 국가이면서도 구 소련군 교리를 따라하고 있다'라는 반농담성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진지하게 따져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군의 교리는 전통적으로 당연히 미군의 교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본래 미군은 이미지와는 달리 포병 전력을 결코 경시하지 않는다. 아래에 언급하겠지만 이미 2차 세계대전 때부터 현대까지 미군은 포병 전력을 매우 중요시하며 실제 전과 역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만 미군은 확실한 제공권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항공 전력을 포병 화력과 함께 동시에 투입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항공 전력은 실제 화력과는 별개로 그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미군은 냉전 종식 이후 전면전/총력전보다 비정규전, 국지전에 집중하고 있는데 포병 병과는 이미지 면에서 이런 전역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실제 전력 확충 및 운용과는 별개로 마치 미군이 포병을 경시하고 항공 전력을 더 중요시한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한국군은 북한의 존재 때문에 전면전/총력전에 집중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항공 전력이 열세하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이를 포병의 비교우위로 상쇄해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마치 한국군이 미군보다 더 포병 전력을 중요시한다는 착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