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이 '김일성만세' 시 를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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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이 '김일성만세' 시 를 쓴 이유

 

 

김일성 만세는 4.19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60년 10월 6일에 김수영이 쓴 시이다. 이 시에서 김수영은 4·19 혁명 이후 출범한 제2공화국과 민주당의 장면 내각이 제1공화국의 이승만 정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당시 그는 <김일성만세>를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 각각 보내지만 발표되지 않았다.


김수영은 자유주의자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핵심이었으며, 공론화를 거쳐서 다수결로 결정된 것이면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탄압해도 된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4.19 혁명 이후 등장한 민주당의 장면 정권이 개인의 자유를 회복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인정하자 실망하여 저런 시를 쓴 것이었다.

반공 정서가 많이 무뎌진 21세기에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슬쩍 국가보안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떠봤다가 반발이 거세자 국가보안법을 인정한다며 한발 물러설 정도였는데, 하물며 6.25 전쟁의 기억이 생생했을 당시 분위기는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즉, 김수영은 다수와 배치되는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법과 공권력으로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영미식 리버럴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개박살난 최빈국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그 정도로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와 인식이 발전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한탄하며 탄생한 시이다.

김수영의 '김일성 만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당연히 김일성이 우리나라에 저지른 침략 행위와 그를 합리화하기 위한 주장들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이 시의 '김일성 만세'는 어디까지나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장치일 뿐 그가 김일성을 진짜로 찬양했다는 의미로 오독하면 곤란하다. 요컨대 이와 같은 다소 극단적인 발언도 가능해야 국민들의 희생으로 일구어낸 표현의 자유가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비판

현실적으로도, 알라후 아크바르 또는 독일의 나치 찬양 금지 법안이나 미국의 암묵적인 인종 차별 언어에 대한 금기시처럼 실제로 모든 종류의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다면 오히려 일부 구성원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법률에 의해 제한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제 21조 4항의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는 말과, 37조 2항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말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 이를 참조하면, 4.19 혁명 직후 여전히 실질적인 위협으로 기능하고 있던 북한 및 김일성에 대한 찬양과 같은 극단적인 발언조차도 가능해야 한다는 이 시의 메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기 힘든 것이었고, 따라서 현재에까지 논쟁의 주제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이유로 국가가 억압할 이유는 없다.'라는 말도 많으며 특히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그런 식으로 약간의 안전을 위해서 약간의 자유를 희생시키려는 시도는 결국 안전도 자유도 얻지 못하고 패망할 것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특히 무엇보다 '법'을 제정하는 것의 주체가 결국은 국회의원과 (넒게보면)대통령이기에 '어떤 것이 안전을 침해하는가'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메카시즘시절과 다를 게 무엇이냐?라는 비판까지도 나올 정도이다. 즉 악용의 여지도 높으며 그걸 넘어서 그 사람의 뜻에 공감하냐 안하냐와 별개로 국가는 이를 막을 이유가 없다. 라는 식의 비판도 나온다. 이는 자유지상주의는 물론 고전적자유주의에서도 나오는 애기이며 이들이 말하는 '안전'은 살인, 강간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지 표현의 억압이 아니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상황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13년부터 민주당계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통해 계속해서 발의되고 있는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의 개정안 중에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2020년 10월 27일 발의안 기준)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는데, 보수정당 지지자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여겨 반발하고 있고, 민주당계의 리버럴이나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당사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표현에 대한 합당한 제한"으로 여겨 지지하고 있다. 즉 표현의 자유 자체가 아니라도,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면 어디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제한되어야 할지를 두고 각론이 펼쳐지고 있는 셈. 2020년 10월 27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74인이 만장일치로 이 개정안을 발의하여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 더더욱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물론 이미 지만원 등이 처벌받았고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여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나, 처벌 수위를 대폭 끌어올리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역사왜곡금지법의 경우에도 매우 모호하며 학술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5.18의 경우에는 5.18시기에 목숨 바쳐서 지킨 자유를 왜 너희들이 멋대로 다시 죽이려 하느냐는 식의 비판 또한 거세게 나오는 시점이다.

다른 역사왜곡과의 형평성 논란도 존재한다. 김원웅 전 국회의원은 1993년에 국정감사 과정에서 "6.25 전쟁이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당시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던 남한의 실태와 비교하여) 완전히 부정하기 어렵다"고 발언한 바 있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냐는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었으나, 어찌되었건 이 또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옹호받기도 했다. 북한은 한미를 ‘제국주의 연합 세력’이라 칭하므로 한미와 싸운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 칭하며 한미가 침략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역사왜곡에 대해 외교부는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지적하며, 이미 국제적 논쟁이 끝난 문제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바뀔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타 

시인끼리도 디스를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시이다. 다만 엄밀히 말해서 순수한 시라기보다는 시의 형식을 빌려 쓴 정치적 의견 표명에 가깝다. 깨알같은 조지훈과 장면의 디스가 비유적 표현이나 은유적 표현 같은 시적 표현이 아닌 직설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만 봐도.

어쩌면 1990년대 이전의 남한 정부의 과도한 국민 압박을 디스하는 시일 수도 있다. 국가가 하도 김일성을 핑계대가면서 국민들을 쥐어짜니까 이에 대한 반발로 이 시가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논한 작품이다 보니 이념 갈등에서 이 시의 진정한 의미가 이렇다 하는 식으로 각 진영에서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가져다 쓰기도 한다. 물론 현실에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디건 간에 사람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기 때문에 성향에 상관없이 그냥 자기가 멋대로 말하기 위한 핑계로 쓰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2010년, 인디밴드 밤섬해적단이 자신들의 앨범인 서울불바다에서 《김정일 만세》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김수영의 경우처럼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에 있어 한국 사회를 풍자하고 비꼬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정말로 김정일을 찬양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김정일 만세, 만만세!"라 외친 후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과 이름이 같은 한국의 예술가 기업가들의 업적을 늘어놓는다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영광 시인은 문학동네 2016년 봄호에 이 시를 패러디한 '박근혜 만세'라는 제목의 시를 투고하기도 했다. 이 시는 2018년에 발간된 시집 '끝없는 사람'에도 수록되어있다.

2019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5.18 망언을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겨냥하여, 얼마 전 오스트리아에서는 나치를 찬양하는 어떤 대학교수가 처벌을 받았다며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은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박원순 시장부터 처벌받아야 마땅하다며 2004년 9월에 광화문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던 것을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은 5.18을 존중하지 않는 보도에 대해 언론의 자유에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한계가 있으며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민주주의는 관용을 베풀지만 민주주의 그 자체를 훼손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까지 관용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동족을 수백만명 죽이는 비극을 일으킨 김일성을 찬양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 당사자가 박원순 시장 아니냐고 지적하여 '박원순이 박원순에게'와 같은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2020년판 '김일성 만세' 시가 등장했다. "나는 5.18을 왜곡한다"라는 제목의 시인데,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광주광역시에서 중, 고등학교를 나오고 1980년 5월 21살의 나이로 5.18을 겪은 장본인이다.# '김일성 만세'가 정말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표현이듯, 518을 왜곡한다는 시의 제목 역시 같은 주제다. 5.18역사왜곡처벌법에 21살의 내 5.18은 뺏기기 싫다며,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왜곡한다며,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 줄 몰랐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자유의 5.18이, 민주의 5.18이 법과 감옥에 갇히다니 그들만의 5.18을 저주한다며 한탄했다.

2021년 청주 시민단체 간첩단 사건에서 충북청년신문 관계자가 '김일성 만세'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물론 명목상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으나, 실상은 표현의 자유를 빙자하여 은근슬쩍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김수영이 바라던 세상은 2018년 문재인 정부 시절 드디어 성취되었다. 공영방송 KBS '오늘밤 김제동'에 '김정은 위인맞이 환영단'이 출연하여 김정은을 찬양하는 방송이 송출됐기 때문이다. 방심위에서는 '문제없음' 판결했고, 진보언론에서는 김정은 찬양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내면의 검열이 작동했니, 반공의 포로니 '쿨하지 못한' 프로불편러 취급하며 조롱하는 듯한 칼럼으로 방송을 옹호했다. 당시 한 의원이 김제동 방송을 폐지해야한다는 성명을 내자 민언련은 '언론자유 침해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PD연합회는 '오늘밤 김제동'에 대한 마녀사냥을 중단하라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당시 진행자 김제동은 김정은 찬양 발언에 웃어넘기면서 '쿨한' 모습을 보였고, 적반하장격으로 출연자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왔는지 시험해보고 싶다며 김정은 찬양에 부들대는 사람들을 놀리듯이 더욱 김정은 만세를 외쳤다. 당시 쿨하게 웃던 김제동을 보며 진정한 표현의 자유라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만약 그 출연자가 욱일기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면 김제동과 진보언론에서는 그리 쿨하게 넘어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공영방송 KBS에서 김정은을 대놓고 찬양해도 허용되는 것까지만 보면 김수영의 바람대로 한국이 '주적'을 공개적으로 찬양해도 존중해주는 '표현의 자유 끝판왕 국가'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023년 삼일절에 한 일반인이 자신의 집 베란다에 일장기를 내걸었다는 이유로 신상 털리고 진보언론에서는 여러 단체에서 그 집 앞에 찾아가 항의하고 위협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여론의 죽창질을 조장하며 인민재판에 앞장선 것을 보면 꼭 그렇진 않을 수 있다. 이 시민을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거나 '마녀사냥을 중단하라'며 옹호하는 진보언론은 없었는데, 만약 공영방송에서 주일미군 부대마크인 욱일기를 보여주며 찬양하는 방송이 송출됐다면 어땠을까? 그 시민은 광화문 광장에서 일장기를 내걸었던 것도 아니고, '대일본제국 만세'와 같은 문구가 있지도 않았음에도 단지 자신의 집 베란다에 일장기 하나 내걸었다고 더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을 정도로 인민재판을 당했는데, 이런 모습은 아직 김수영이 바라던 세상이 아닐 수 있다. 만약 그 시민이 욱일기라도 내걸었다면 더욱 험한 꼴 당할 수도 있었다. 한편, 이석기 의원의 내란선동 사건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은 과거 토론방송에서 비판적인 진중권에게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지 못하면 미개국가'란 발언을 한 적이 있다.